재난의 시대…지금은 '문학의 위로'가 필요한 시간

입력 2022-11-09 18:49   수정 2022-11-10 00:48


재난은 반복되고, 억울한 죽음은 계속된다. 그럴 때마다 문인들은 절망한다. 30년 넘게 시를 써온 나희덕 시인(56)조차 “폭력과 죽음이 넘쳐나는 현실 속에서, ‘문학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나’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문인들은 펜을 꺾지 않는다. 계속 무언가를 쓰고, 사람들은 그 글을 읽는다. 왜 그럴까.

9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30회 대산문학상 수상작가 간담회에서도 이런 얘기가 오갔다. 바로 옆에서 일어난 이태원 사고와 저 멀리 우크라이나 전쟁이 앗아간 무고한 생명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시집 <가능주의자>로 시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나 시인은 요즘 같은 ‘재난의 시대’에 사람들이 시와 소설을 찾는 이유를 문학의 본령에서 찾았다. 그는 “문학은 현실을 증언하고 애도하는 간절한 목소리이자 고통받는 존재에 귀를 기울이는 마음”이라고 정의했다. 팍팍하고 참담한 현실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넬 힘이 문학에 있다는 얘기다.

나 시인은 “<가능주의자>에 수록한 시들은 모두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썼다”며 “사회적 재난을 겪으면서 ‘고통받는 존재들에게 다가가 곁을 지키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스러져가는 것들, 죽어가는 존재들, 세상에서 지워져 가는 목소리를 살려내고, 다정하게 그 곁을 지키는 게 시의 역할”이라며 “그래서 문학에선 저항과 다정함이 별개의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표제작인 시 ‘가능주의자’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직 무언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어떤 어둠에 기대어 가능한 일일까요/어떤 어둠의 빛에 눈멀어야 가능한 일일까요” 나 시인은 “현실의 어두운 전망 속에서도 희미한 빛을 찾고 싶다는 바람을 시에 담았다”고 했다.

소설 부문 수상작인 한강 작가(52)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 생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는 <채식주의자>로 세계적 권위의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을 수상한 국가대표급 소설가 중 한 명이다. 한 작가는 <소년이 온다>에서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상황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 데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역사적 비극을 망각하려는 시도와 맞섰다.

한 작가는 “소설을 쓸 때 4·3 사건은 무고한 죽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며 “결국은 우리가 연결돼 있다는 믿음을 붙잡고 소설을 썼는데, 요즘 접하는 아주 많은 죽음들 속에서 그런 생각을 이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이태원 사고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는 “<작별하지 않는다> 이후 여러 이유로 1년 넘게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며 “이 상을 주신 것이 ‘이제 그만 쉬고 다시 글을 열심히 써보라’는 말씀 같아 다시 아침마다 책상으로 가는 일상을 회복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한기욱 문학평론가(65)의 평론집 <문학의 열린 길>은 심사위원들로부터 “우리 현실에 대한 예민한 인식과 문학적 성취 사이의 대화적 고민이 남다르다”는 평을 받았다. 한 평론가는 이날 ‘한국 문학의 생명력’을 강조했다. 그는 “독자 수 감소로 ‘한국 문학은 죽었다’는 자조마저 나오지만, ‘한국 문학은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생각을 저버린 적이 없다”며 “서구권에 비해 한국인은 시와 소설을 즐겨 읽을 뿐 아니라 20~30대 여성 등 문학을 소중히 여기는 젊은 층도 두텁다”고 했다.

황정은 작가의 <백의 그림자>를 불어로 옮긴 번역가이자 소설가 한국화(35)·사미 랑제라에르(37) 씨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고 있어 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대산문학상은 총상금이 2억원에 이르는 국내 최대 종합문학상이다. 시·소설·평론·희곡·번역 총 5개 부문을 시상하는데, 평론과 희곡은 번갈아가며 격년으로 수상작을 선정한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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